방송     2월 1일 큐티설교(요한복음 8:12-20) 세상의 빛, 예수

2월 1일 큐티설교(요한복음 8:12-20) 세상의 빛, 예수
[토요일] 2월 1일 큐티설교(요한복음 8:12-20) 세상의 빛, 예수
2020-02-01 09:32:22
이한솔
조회수   396
설교일 2020-02-01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이다라고 자기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곱 가지 자기 선언이라 그렇게 말하는데요. 나는 생명의 떡이고, 양의 문이고, 선한 목자고, 부활 생명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참 포도나무라고 주님은 그렇게 자기를 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세상의 빛으로 자신을 소개하셨는데요. 1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여러분, 구약성경은 종종 메시야를 빛으로 비유했습니다. 이사야서 426절 말씀에는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말라기서 42절 말씀에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메시아에 대한 이 구약의 말쓸들은 모두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그것을 선언하고 계신 거예요. 자기 스스로 자신을 증언하신 거죠.

 

예수님은 결코 자기 자신을 설명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으셨던 거예요. 예수님은 그런 게 필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변호하면 되셨던 거예요. 그러나 사람들은 또 다른 증인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을 빛으로 증언해 줄 두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건 사람의 방식입니다. 율법은요.

 

자기를 증언할 때 두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래야지만 참이라는 거예요. 그래야지만 거짓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신명기 1915절은 이렇게 말해요.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그리고 이 말씀을 바리새인들이 이용하게 됩니다.

 

이 말씀 붙들고 예수님을 정죄한 거예요. 어떻게 당신 스스로 자기를 증언할 수 있냐는 겁니다. 이것이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어요.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고 잣대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그게 뭐냐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데 알아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것으로는 절대로 이해되지 않는 거예요. 피조물인 인간의 노력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 이처럼 인간의 방식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모든 율법을 정확하게 연구하고 꿰뚫었다고 해도 빛으로 오신 메시아는 알아볼 수 없어요.

 

그들이 예수님 앞에 서 있다고 해도 알아볼 수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그들이 범한 우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그러고 있을 수 있어요. 바리새인들에게 있었던 그 어리석음이 우리한테도 나타날 수 있어요. 우리 역시 우매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하면 되요.

 

잘 모르면 잘 모른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차라리 그게 더 속 편해요. 억지로 풀어보겠다고 잘못된 잣대 들이미는 게 아니라 아주 처음부터 잘 모르겠다고, 도와달라고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게 진리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에요. 아주 겸손하게 자신의 생각과 잣대를 내려놓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에 도달하는 지름길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이런 사람 있을 거예요.

 

예수를 봐야 믿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 있을 겁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이에요. 왜냐하면 그들도 똑같은 질문을 하거든요. 그게 뭐냐면 육체를 따라 판단하겠다는 거예요. 눈으로 봐야지만 믿겠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주님이 뭐라고 하시죠? 1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니 아니하노라.

 

여러분, 육체를 따라 판단해서는 절대로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나누는 대화를 보세요. 매치가 안 되고 있습니다. 서로 동문서답하고 있어요. 바리새인들은 지금 예수님께 두세 사람의 증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진짜 세상의 빛이면 그것을 증명해 줄 두세 사람의 증인을 데리고 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해요.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그러니까 이런 말이에요. 너희가 증인을 요구하니까 알려줄게. 한 명은 율법을 완성한 말씀 그 자체인 나고, 다른 한 분은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2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요.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러분,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자기 자신을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대화가 점점 꼬이고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들이 이해하기 더 어려워졌어요. 여러분, 그들은 지금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색안경 끼고 보고 있어요. 육체를 따라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어둠 속에 있으면서 빛 되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다시 질문할 수밖에요. 그들이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그 아버지는 어디 있나요? 그리고 그가 어떻게 당신을 증언한다는 말입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해요. 19절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여러분,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평행선 같은 대화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대화를 한 성경의 인물이 또 있어요. 그게 누구냐면 니고데모에요. 니고데모. 율법학자로 유명했던 바리새인 니고데모.

 

그 역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있는 예수님을 니고데모가 본 거예요. 그 말씀을 듣는데 따로 그를 한번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질문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밤에 아주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게 구원의 시작이에요.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예수님은 구원 얻으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했는데 자기는 그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더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자기 머리로는 오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하고 니고데모하고 다른 게 뭔지 아세요?

그게 뭐냐면 니고데모는 다른 바리새인들처럼 나는 이해 못 하겠다그러고 끝내지 않았다는 거예요. 니고데모는 그들과 다르게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고백했던 거예요. 예수님께 다시 질문한 겁니다. 예수님, 다시 태어나다니요? 그럼 제가 엄마의 배 속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보기에 이 질문은 굉장히 무식해 보이는 질문일 수 있어요.

 

그걸 질문이라고 해? 엄마 배 속에 다시 들어간다니. 아이고, 참으로 멍청하다. 그런데요. 그거 아세요? 이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중생에 설명하신 거예요. 예수님으로 하여금 중생에 대해 설명하게 만든 그 계기가 바로 이 니고데모의 멍청한 질문이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니까 예수님이 그에게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니고데모가 누굽니까? 니고데모는 절대로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당대에 율법학자로 유명했던 자가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모르는 게 있었어요. 그가 아무리 율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쳤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안 들은 게 아니에요. 다 듣긴 들었는데 도무지 이해 안 되는 게 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질문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알 건 알아야 되니까요. 사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수 있어요. 그냥 아는 척하고 가만히 있으면, 고개 몇 번 끄덕이면 민망한 상황은 피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다시 물은 거예요. 어쩌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릅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리고 출신이 변변치 않은 사람한테 질문한다는 게 아니꼬울 수 있어요. 여러분, 니고데모와 바리새인들 중 누가 더 낫습니까? 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보다 니고데모가 더 나았던 부분은 그가 예수님께 다시 나아갔다는 거예요. 이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간 겁니다.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것은 그가 육신의 생각과 잣대를 내려놓고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을 바라보았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진리 되신 주님이 보이더라는 거예요. 주님을 진짜 제대로 만나게 된 겁니다. 여러분, 니고데모의 그 겸손함은 그를 예수님 앞에 다시 서게 했습니다. 니고데모도 얼마든지 율법 운운하고 자기 생각 운운하며 두세 사람의 증인을 요구할 수 있었어요.

끝까지 자기 방식 고집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했어요. 왜요? 그래야지만 어둠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야지만 구원자 되신 예수를 제대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방식을 계속 고집해야 할까요?

 

아니면 내려놓고 니고데모처럼 해야 할까요? 바라옵기는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간 니고데모와 같은 믿음의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환경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선하시고 정확하시고 변함없으시고 실수 없으시고 영원하시고 또 완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판단과 말씀이 늘 참되고 정확하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 믿음은 진보할 것이고 우리의 성품은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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