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2월 8일 큐티설교(요한복음 10장 1절에서 10절) 목자와 강도

2월 8일 큐티설교(요한복음 10장 1절에서 10절) 목자와 강도
[토요일] 2월 8일 큐티설교(요한복음 10장 1절에서 10절) 목자와 강도
2020-02-08 09:37:31
이한솔
조회수   293
설교일 2020-02-08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진정한 목자가 누구인지 두 부류의 사람을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은 목자와 강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목자와 강도는 굉장히 다르죠. 무엇이 다른가요? 양에게 나아가는 방법이 다릅니다. 강도는 몰래 갑니다. 담을 타고 넘어가요. 그것도 아주 슬그머니, 아주 은근슬쩍 양에게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목자는 자기 정체를 드러내며 옵니다. 아주 정상적인 방법으로 오는 거예요. 아주 정당한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목자와 강도가 왜 이렇게 다른지 아세요? 그것은 양을 대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강도는 양을 죽이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양을 살리는데 있죠. 여러분, 이처럼 방법도 다르고 목적도 다릅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그렇다고 한다면 양은 목자와 강도 중에 누구를 만나야 하겠습니까? 물어보나 마나 목자죠. 목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요. 그렇다면 진정한 목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분밖에 없어요. 진정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그분이 무슨 일 하는지 아세요? 진정한 목자는 무슨 일을 할까요?

 

많은 일이 있겠지만 오늘은 네 가지 정도로 설명 드리려고 해요. 그 첫 번째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는 겁니다. 진정한 목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구별하여 알고 있어요. 우리 주님이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다 알고 계세요. 이것은 우리의 형편과 특성과 근심과 어려움을 다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저 역시 성도님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한 번 외워보겠다고 계속해서 요람을 보고 있기는 한데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다 외워지질 않아요. 그래서 혹시나 성도님들 대할 때 실수할까 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앞에 두고 다른 사람 이름 부를까 봐 함부로 이름을 못 부르는 거예요.

 

그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요. 저와 달라요. 우리와 다르다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알고 성향을 알고 어려움을 알고 그리고 흘리는 눈물과 한숨을 알고 애통을 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참 목자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잊을 수 있어요. 어떤 부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의 이름을 기억 못 한다 그래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 기억하신다는 거예요. 자기 백성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하신다는 겁니다. 현대사회는 사람을 두고 번호를 매기죠. 1, 2, 3, 4. 은행만 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에게 번호를 매기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이름이 아무리 똑같아도 그렇습니다. 각각 구별하여 다 아시는 거예요. 주님은 절대로우리 보고얘들아그렇게 부르지 않으십니다. 그러지 않고누구 누구야그렇게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렇게 우리를 인도해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주님은 내 문제 모를 거야. 내 눈물은 모를 거야. 내 한숨은 모를 거야.’하지 마세요. 주님은 절대로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다 따로 만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세요.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안심하셔도 돼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리 주님이 우리 문제와 형편을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세요. 왜냐하면 그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우리보다 앞서가세요. 여러분, 이게 주님이 하시는 두 번째 일입니다. 다함께 4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여러분, 주님은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혼자 갔다와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양을 홀로 보내시지 않으세요.‘너 혼자 갔다와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뒤에서 양을 몰고 가는 것도 아니에요. 항상 앞서가세요. 언제나 양들 곁에서, 그러나 그보다 앞서 행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주님이 앞서 행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이 그렇고요.

 

선교가 그래요.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이 오늘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오는데 그들의 일정 가운데 주님이 앞서 행하지 않은 순간이 단 한 순간도 없어요. 청년부 수련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죠? 주님이 23일의 일정 동안 준비해 주시지 않은 게 단 하나도 없어요. 다 앞서 행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주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늘 앞서가시는 겁니다. 그렇게 늘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세요.

그런데 여러분, 주님이 앞서가신다는 건 뭘 말하는 걸까요? 몰아치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피곤해하면 쉬어가 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페이스에 맞춰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아세요? 우리는요. 어느 곳에 풀이 있는지, 물이 있는지, 그리고 어느 곳이 위험한지 모릅니다. 우리 같은 양들은 다 몰라요.

 

그런데 누구는 안다는 겁니까? 목자는 안다는 거예요. 목자는 야생동물이 있는 위험지역이 어딘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곳으로 양들을 데려가지 않아요. 다 피해 가는 겁니다. 그렇게 양들을 인도해가요.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목자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고 따라야죠. 그런데 왜 안 따르세요? 왜 안 따르시냐고요. 우리는 주님을 따를 때 올무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야지만 덫에 걸리지 않아요. 그래야지만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게 주님이 하시는 세 번째 일이에요.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주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무슨 말이죠? 자기 따라오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구원받는다는 건 죽음을 피한다는 겁니다. 10절 말씀에 이런 표현이 있어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이 말은 죽지 않고 살게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양들이 죽지 않고 사는 방법은 딱 한 가지에요. 뭐죠? 목자가 지키는 우리 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게 양의 역할이에요. 그러면 목자의 역할은 뭐죠? 우리 안에 들어간 그 양들을 지키는 겁니다. 양들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목자가 지켜주는 겁니다. 그 무서운 이리 떼를 누가 내쫓아 주겠어요? 양이 내쫓나요?

 

아닙니다. 목자가 내쫓아요. 양은 그 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그 목숨을 걸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양의 안전지대는 절대로 양이 지키지 않습니다. 양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어요. 그런 능력은 목자에게만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이처럼 예수님 안으로 들어갈 때 죽음을 면하게 됩니다. 죽음은 아주 무서운 거예요. 이리 때와 같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아요. 지금도 죽음은 우리를 완전한 파멸로 이끌기 위해 우리를 우겨 싸고 있습니다. 어떻게 피하실래요? 어떻게 구원 받으실래요? 다른 방법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러나 없다면 목자 되신 주님 안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 방법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오직 그분만이 구원의 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생명의 문이에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건지실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 있어야 죽음이 우리를 망가뜨리지 못해요. 그 어떤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죽음조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분 안에 있어야 영원히 살 수 있어요.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의 문제는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겁니다.

 

철학도 우리를 지키지 못하고 그 어떤 사상도 우리를 지키지 못해요. 종교도 그렇고요. 요새도 그래요. 그 어떤 사람도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그래요. 그것에 대해 굳이 말하자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정도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진짜 죽음은 피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주님만 의지해야 돼요. 그래야지만 풍성한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주님의 네 번째 일이에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여러분, 여기서 꼴은 짐승들이 먹는 풀을 말합니다. 무공해 양식, 유기농 양식이 바로 꼴이에요. 이 꼴을, 이 기가 막힌 양식을 양들이 들어갈 때도 먹고 나올 때도 먹는다고 그래요.

 

부럽지 않습니까? 이거야말로 복이죠. 우리가 우리 안에 있든지 우리 밖에 있든지 주님이 우리를 다 먹이신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염려할 필요가 없죠. 이곳에서도 먹이고, 저것에서도 먹이신다는데? 제가 호주에서도 살아보고 홍콩에서도 살아봤거든요. 그런데 주님이 다 먹이시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풍성하게. 예수 믿으면 그렇게 됩니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어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 중에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예수 믿으면 망한다는 겁니다. 인생이 재미없다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냐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삶의 의욕을 잃을까 봐 믿고 싶어도 믿지 않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도 한 번 믿어보라니까요. 믿어보고 얘기하라니까요. 이게요.

 

진짜 믿게 되면 세상 즐거움? 쨉도 안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죠? 웃음이 회복됩니다. 눈물이 회복되요. 세상은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회복 안 하실 겁니까? 하셔야죠. 주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그걸 빼겠어요. 주님이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꿈꾸게도 하시겠다는데.

그리고 지갑을 열어 가난한 사람을 돕게 하시겠다는데, 또 도움을 받게 하시겠다는데, 그리고 칭찬을 하거나 듣게 하시겠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빼겠어요. 여러분, 이게 복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게 풍성한 삶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술 잔뜩 먹고 노는 사람보다 얼마든지 더 즐겁게 놀 수 있어야 합니다.

 

맨정신으로 확실하게 놀지 못하면 크리스천도 아니에요. 술을 먹어야지만 가능합니까? 주님이 우리 가운데 기쁨을 부어주시면 우리도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어요. 여러분, 죽을 맛 나는 삶이 아닌 살맛 나는 삶 살고 싶으시죠? 그리고 깨어진 삶이 아닌 회복 된 삶 살고 싶으시죠? 그러면 예수님 안에 계세요. 왜냐하면 그런 삶은 예수님 안에서만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으로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를 이끌어주실 거예요. 이게 사실이고 진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 우리가 살아온 삶보다 얼마나 더 무궁무진한지 몰라요. 그분의 세계가 얼마나 풍성한지 모릅니다. 그것을 경험했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어요. 자기 잔이 넘쳤다고. 그 속도가 비록 졸졸졸이었어도 차고 넘쳤던 거예요. 주님이 부으신 축복의 잔이 그렇습니다.

 

차고 넘쳤던 거예요. 우리가 아직 다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지 진짜로 풍성한 삶이 아닌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절대로 이게 다라고 단념하지 마세요. 아직 끝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절대로고작 이 정도야?’그렇게 단념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그러면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는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설교를 마칩니다.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실 목자는 세상에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알고 관심을 가져 주시는, 그리고 혼자 보내지 않고 앞서가시며 함께 하시는, 그리고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는 그런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누구를 닮아야 되겠습니까? 강도 같은 저 세상입니까? 아니면 목자 되신 주님입니까?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가 주님을 닮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역시 주님과 같은 선한 목자가 되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부모와 그런 자식과 그런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쓸데없이 저 세상 닮겠다 하지 마시고 주님만 닮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 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오늘 그걸 놓고 기도하려고 해요.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주세요. 우리 교회가 예수님만 닮아가도록. 그러면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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