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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큐티설교(마태복음 14:13-21) 빈 들의 잔치
| 설교일 | 2019-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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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마태복음 14장의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이적입니다.
막 6:30-44; 눅 9:10-17; 요 6:1-14 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 복음서에서 조금씩 관점은 다르지만 예수님께서 이 놀라운 기적을 행하심을 통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제자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시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마14: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3절 예수님이 들으셨다는 것은, 1절부터 기록된 세례 요한의 죽음의 소식과 헤롯이 예수의 사역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나서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들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소식을 듣고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로 가셨습니다.
글의 흐름으로 봤을 때 3~12절은 삽입된 것입니다. 14장 1-2절 다음에 바로 13절로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저자 마태는 여기서 13절로 연결하지 않고 3-12절까지 장황하게 세례 요한의 죽음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가 특별한 의도를 갖고 삽입한 것입니다. 헤롯의 성격이 어떠했고, 그 당시 예수께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수께서 헤롯이 자신에 대한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배를 타고 떠나 빈들로 가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헤롯은 로마 권력에 아부하면서 권력을 취한 헤롯 집안의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가 그의 형수를 아내로 취하여 결혼한 것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집요하게 추궁하고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헤롯은 단호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눈엣 가시 같은 요한을 제거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았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헤롯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러나 교활한 그의 아내와 딸은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결국 술김에 세례 요한을 처형토록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했고, 헤롯은 예수님에 대해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품고서 예수님을 예의주시 하게 되었다는 정황을 설명해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더 이상 숨어서 사역하실 수 없게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며 경계하였던 것처럼, 예수님을 경계하고 감시할 것임을 직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각을 정리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떠나, 제자들을 떠나 홀로 빈 들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주님이 일으키시는 기적, 그분이 전하시는 말씀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혼자 있기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과는 달리 여러 고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왔습니다.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배를 타고 빈들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무리들이 여러 고을로부터 찾아왔는데 예수님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고 마가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고 했습니다(막 6:33).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가는 것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달려왔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들이 이토록 기를 쓰고 쫓아온 이유를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고 했습니다(요 6:2).
무리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능력의 역사를 보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해결 받기 위해 예수님을 쫓아온 것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표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병자들의 병이 나았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리들일지라도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생각이 복잡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하여 더 외딴 곳으로 숨으실 법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리를 배척하지 않으시고, “불쌍히”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그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은 풍성한 자비를 베푸시느라 해가 지는 줄도 모르셨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제자들은 온 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의 저녁 식사가 끼니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네로 보내어 사먹게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마 14:15-16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무리를 보내어 사먹게 하자고 제안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6절에 보면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주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을 줄 지어 앉게 하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그 적은 음식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라 명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서도 5천명이나 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남은 음식 부스러기만 해도 12바구니나 채워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복음서마다 조금씩 관점이 다르다고 서론에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요한복음 6:53-58절에서는 요한이 이 기적을 성만찬과 연결해서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분이시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다른 관점에서 오병이어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게가 있습니다.
마태는 16, 17절을 통해 우리에게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다른 교훈을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고자 했던 교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우리는 완벽하게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제자들을 돕고자 하셨습니다.
기록된 성경 마태복음을 읽을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 오병이어 사건을 보면서 이 말씀에 찔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이 소리가 우리 가슴에도 들려지기를 소원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도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딘가 식당을 예약을 해 놓으신 것인지, 우리더러 먹을 것을 사오라는 얘기인지 의아해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을지 온갖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무리들을 흩어지게 해서 각자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하시면서 그들에게 도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17절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을 보면 제자들에게는 어찌하든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심정과 자신들의 가진 것으로는 먹일 수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속 오병이어 이적은 극적인 대조가 나타납니다.
빈들에서 이루어지는 만찬. 아무 것도 없는 이 땅에서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12바구니나 부스러기를 남길 만큼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을까요?
고독과 절망의 땅 빈들에서 어떻게 이렇게 풍성히 누릴 수 있을까요?
또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소망과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이 어찌 가능한 것일까요?
그러나 마태가 묘사하는 오병이어 사건은 이 놀라운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님이 계시기에 오병이어 이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 어떤 곳, 어떤 상황에서도 풍성한 잔치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비록 빈 들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계신 곳은 소망의 장소, 회복의 땅, 위로의 장소, 축복의 장소로 변화되어 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적용을 해봅니다.
첫째,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문제를 온전히 내어 맡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기도를 드립니다. 하지만,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기도를 드리지만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탓에 기도를 마치고서 그 문제 보따리를 꽁꽁 싸서 또 들고 일어섭니다. 끙끙대고 있기는 하지만 주님께 완전히 내어 맡기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복잡하신 예수님, 홀로 고요한 시간을 갖기 원하셨지만 주님을 간절히 찾는 무리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간절함을 아셨기에 저녁 늦도록 배가 고파도 주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 간절함 때문에, 주님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빈 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빈 들에서 우리의 문제, 우리의 어려움을 주님께 고하고 온전히 해결 받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집니다.
“주님 우리는 못해요, 우리에게 왜 이걸 바라세요? 우리에게는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 뿐입니다” 라고 주님께 대답하실건가요?
주님은 그 대답 듣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명하시는 것은 이제 너의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나의 손과 발로 삼았다. 너는 나의 동역자’다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권능을 제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능력이 있으며, 그 능력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기를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빈 들, 아무것도 없다고요?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권세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빈 들은 고독과 슬픔의 땅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권능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배경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는 풍성한 하늘 잔치를 누리게 하십니다.
출애굽 만나의 기적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재현하심으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무리들에게 하늘 잔치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참 떡이신 예수님을 통해 육체의 필요 뿐 아니라 영적 필요도 채우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먹는 영원한 생명의 밥상, 그 기쁨의 잔치 자리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비록 빈 들과 같은 곳을 걸어가지만, 이곳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 보일 때, 우리를 통해 천국 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이웃과 지역사회에서 주님의 복과 은혜를 전하여주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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