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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큐티설교(느헤미야 1장 1-11절 ) 듣고, 울고, 슬퍼하고, 기도하며
설교일 | 2019-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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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장 1-11절 듣고, 울고, 슬퍼하고, 기도하며
느헤미야를 소개합니다.
포로 귀환 시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세 권의 역사서가 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입니다.
에스라서는 1차 포로 귀환으로부터 3차 포로 귀환 적전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룹니다. 곧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 이야기와(학개와 스가랴) 에스라의 신앙 개혁을 중심으로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건 과정을 다룹니다.
이후 느헤미야는 3차 포로 귀환부터 B.C. 400년경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룹니다.
핵심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개혁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건입니다.
이러한 주제하에 느헤미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 됩니다.
첫 번째는 1-7장 까지이며 느헤미야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대하여 다룹니다.
두 번째는 8-13장으로 이스라엘의 언약 갱신과 개혁에 대하여 다룹니다.
무엇보다도 성벽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집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먼저는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지역의 표시이며,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는 성역의 표시이며, 세상의 죄와 오염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입니다.
즉 성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만을 찬송하는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일들보다 이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귀환을 하고 스룹바벨 성전이 재건 된지 7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성벽이 재건되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느헤미야 1장 3절 말씀입니다.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
73년 동안 성벽을 재건하지 않았기에 포로귀환을 했지만 백성들은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모두 불타 폐허가 되었습니다.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두 눈이 뽑혀 쇠사슬에 묶여 애굽으로 끌려가고, 이스라엘 귀족과 유능한 젊은이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고, 유다에 남은 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들만 남게 된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던 당시 모습과 유사합니다.
바로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리라 상징이 되는 성벽이 재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재건해야 할 성벽은 무엇입니까?
세상과 구별되어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예배의 성벽입니까? 십일조의 성벽입니까? 술과 담배의 성벽입니까?
우상숭배의 성벽입니까? 성결의 성벽입니까?
이 새벽이 그 영역의 성벽을 재건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우리의 삶이 허물어지고 불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만사형통의 인생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예루살렘의 피폐한 상황을 느헤미야가 들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무너져 내린 우리의 현실의 모습을 들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상황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성벽이 무너지고 불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에게 아무런 소망과 희망이 없음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죄인 된 모습에 울 수밖에 없고,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연약함에 울 수밖에 없으며,
73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는 성을 보며 오랜 시간 동안 변화지 않는 나를 보며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내면에 깊은 슬픔이 찾아옵니다.
이 슬픔은 나는 누구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분별의 시간입니다.
나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온 우주의 주권자이심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통치하신 주권자임을 그는 듣고, 울며, 슬퍼함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하나님 앞에 나와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임을 그는 명확하게 분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는 내 삶에 무너진 성벽이 무엇인지 듣고 계십니까?
이 새벽기도 시간이 나에게 무너진 성벽이 무엇인지 듣고 인정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새벽기도회 시간마다 울 수밖에 없습니다.
변할려고 해도 변화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내 힘과 내 방법으로 살 수 없는 나의 무능력을 보며 깊은 통곡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통곡이 끝난 이후, 우리는 명확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하나님은 누구이신지.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들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책임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생사화복의 주권자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는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 새벽이 이 은혜가 임하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명확하게 이해하며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이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기도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주권에 대한 인정을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이 자기부인의 출발입니다.
그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짧은 식견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로움이 하나님의 어리석음보다 더 어리석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의 능력보다 더 강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만이 아닌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는 주인과 그 권위에 대한 친밀감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며 순종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주인의 성품을 경험하고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있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한 부분만 바라보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만 생각하니 내게 사랑이 아닌 다른 모습이 비쳐질 때, 낙심하게 되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새벽기도회 시간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양한 성품을 공부하고 그것을 기도함으로 인해 내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에 대해 균형 있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에 대해 어떤 부분만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 새벽에 하나님에 대해 균형 있게 조명 받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분리가 아니라 공감의 기도입니다.
6-7절 말씀입니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사는 왕궁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천 Km 떨어진 예루살렘에 대해 남 일이라 여기며 모른 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의 죄가 자신의 죄로 받아들이며 회개합니다.
그들의 악행이 자신이 하나님께 저지른 악행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불순종이 자시의 불순종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무너진 성벽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세워가는 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바로 이것입니다.
공감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무정’하며입니다.
‘무정하다’는 뜻은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타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 고통은 전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외롭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 이기적으로 살아 많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대적 외로움 또한 커져갑니다.
그러나 무너진 성벽을 세우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공감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타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합니다.
타인을 통하여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오늘 이 새벽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타인의 죄가 나의 죄인임을 인식하고 탄식하며 기도하기를 축복합니다.
반대로 타인의 기쁨이 나의 기쁨임을 알고 감사함을 기도하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는 말씀에 기초한 기도입니다.
8-10절 말씀입니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
느헤미야의 기도는
자신의 감정만을 토설하는 감정의 배설 창구가 아닙니다. 내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탄원 창구도 아닙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소원 창구도 아닙니다. 철저히 말씀에 입각하여 기도하는 말씀의 자리입니다. 말씀만을 가지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의 자리입니다. |
우리들이 기도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기도 내용은 무엇입니까?
느헤미야처럼 말씀을 토대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어야 하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2019년 올해 안에 최소한 성경 2독을 하십시오. 하루 6장이면 2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예배 시간에 들려지는 말씀을 메모하십시오. 그리고 그 메모를 보면서 기도하십시오.
홈페이지에 올라온 설교 말씀을 다시 찾아서 2-3번 들으십시오.
그렇게 될 때
자신의 감정만을 토설하는 감정의 배설 창구가 아니요, 내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탄원 창구도 아니요,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소원 창구도 아니요, 철저히 말씀에 입각하여 기도하는 말씀의 자리, 말씀만을 가지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기도의 자리로 변화게 될 것입니다. |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주십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벽 재건의 주역으로 힘써야 할 느헤미야에게는 술 맡은 관원의 위치였습니다.
이 위치로 인해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와 재정과 군사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해도 있었지만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할 수 있었으며 개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지금 위치는 어디입니까?
우리 모두 느헤미야처럼 술 맡은 관원에 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벽을 재건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 위치에 맡는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의 자리요, 섬김과 헌신의 자리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 자녀의 자리입니다.
세상에서는 직장인, 사장의 자리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위치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셔서 내게 허락하신 위치임을 인정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헤미야처럼 “듣고, 울고, 슬퍼하고, 기도하며” 서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무너진 성벽들을 하나씩 하나씩 세워 가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번호 | 분류 | 제목 | 작성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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