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1월 31일 큐티설교(요한복음7장53절에서8장11절)시간의 공백

1월 31일 큐티설교(요한복음7장53절에서8장11절)시간의 공백
[금요일] 1월 31일 큐티설교(요한복음7장53절에서8장11절)시간의 공백
2020-02-01 15:46:33
정지원
조회수   188
설교일 2020-01-31

오늘 본문은 널리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앞서 7장에서 일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처형하려 하였지만, 여론의 반대에 밀려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여론을 만들어 예수를 사로잡아 처형하기 위해 꾀를 내었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흉계를 꾸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간음한 여인을 내어 놓으며 이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만약 여자를 돌로 쳐야 한다고 대답했다면 당시 로마법을 어길 상황이었습니다.

로마의 정권은 유대 민간인에게 사형 집행권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자를 돌로 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면 모세의 율법을 거스르는 자로 율법을 어긴 자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참으로 곤란한 상황입니다.

누구라도 당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맨 처음 하신 행동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잠깐의 정막이 흘렀을 것입니다.

땅에 쓴 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여인을 데려온 이들이 재차 질문하며 답변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때 땅에 쓴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신학자들과 주석가들이 이에 대한 추측을 하였지만 정답은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궁금하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인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이 중요한 시간에 예수님은 왜 땅에 무언가를 적는, 이런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에 대하여 그 내용은 모르지만 두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바닥에 쓰는 행동이 여인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었다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들을 돌아보건데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이 여인의 생명을 두고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정은 그 행동 자체가 여인의 목숨과 관련 있는 것이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반복적인 기법을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아주 중요할 때에 반복적인 기법을 사용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두 번이나 땅에 손가락으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쓴 요한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이 행동을 아주 심도있게 두 번이나 언급합니다.

 

자칫 놓칠 수 있는 점은 무엇을 쓰셨느냐가 아니라, 왜 이렇게 쓰는 행동을 두 번이나 하셨느냐 입니다.

 

저는 그것을 시간의 공백이라고 명칭을 정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쓰시는 행동은 예수님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또 모인 자들도 저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군중들은 이 시간의 공백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무언가를 말씀하실 때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 자각을 하면서 여인의 사건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침묵하시면서 시간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여인을 다시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답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하여 더욱 궁금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땅에 무언가를 쓸 때 일어난 시간의 공백입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생각의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여전히 구경꾼인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땅에 무언가를 쓰는 행동인, 두 번째 시간의 공백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재차 질문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다시 땅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땅만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멀리서 보는 자들이 아니라 사건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지만 그것을 쳐다보는 이는 없습니다.

눈은 땅으로 향해 있었을지 몰라도 마음은 자기 삶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공백이 흐른 뒤 여기서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의인으로 나왔던 군중들과 죄인으로 나왔던 여인으로 나누어 집니다.

의인처럼 당당했으나 자기 삶을 직시하고 난 뒤 가책을 느끼고는 예수님을 떠나간 군중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죄인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 시간의 공백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을 다른 말로 기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이 시간은 바로 내 삶의 자리에서 떠나 나를 비우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나의 시간을 비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말씀처럼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머무르던지, 떠나던지입니다.

내가 의인으로 당당하게 왔다면 우리는 말씀 앞에 드러나 부끄러워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죄인으로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기 위해 왔기에 주님 앞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치유과 회복은 예수님과 단 둘이 있는 그 곳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본문에서 그 자리를 피하고 도망하는 것이라면 이 여인이 가장 바라지 않았을까요?

이 비참하고 창피한 이 시간을 공개하고 남에게 보인다는 것이 여인으로서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일까요?

이 충격의 사건이 이 여인의 삶을 곤두박질 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인은 남는 것을 선택합니다.

 

아니, 예수님이 시간의 공백을 통해, 땅에 무언가를 쓰시는 행동을 두 번이나 하시면서 이렇게 단 둘이 남게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앞서 하신 모든 행동은 이 시간을 위해 하신 행동이셨습니다.

 

둘 만 남게 된 이 상황에서야 예수님은 앞서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던 여인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10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러자 여인이 대답합니다.

 

11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과 홀로 대면한 이 시간에 그 여인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우리의 기도는 시간의 공백’ 입니다.

나의 시간을 비워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비워 주님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내게 어려움이 찾아왔다면 그것은 주님과 내가 단독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그것이 멈추지 않는 듯 하지만, 그래서 마치 주님이 나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듯 하지만, 결국 주님의 뜻은 나를 살리시는데 있습니다.

 

내가 모든 세상의 썩어질 것을 의지했던 그 마음의 끈이 떨어져 나가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의 음성에만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을 때까지 주님은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이 기도의 시간에 우리에게도 여인과 같은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으로 나아가 이제는 죄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는 이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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