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8월 9일 큐티설교(에스겔 19:1-14) 유다 왕들의 최후

8월 9일 큐티설교(에스겔 19:1-14) 유다 왕들의 최후
[금요일] 8월 9일 큐티설교(에스겔 19:1-14) 유다 왕들의 최후
2019-08-21 14:02:02
강주헌
조회수   465
설교일 2019-08-09

오늘 본문 에스겔 19장은 유다의 멸망을 두 가지 비유의 말씀으로 예언하는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함이 없고 우리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이 비록 주님을 배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유다 백성들이 당신과의 언약을 기억하면서 그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길 원하신다는 뜻을 전하셨습니다.

인간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의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시는 은혜의 날 보내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겪게 될 일을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통해 전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예언의 말씀이 아니라,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슬픈 노래, 애가를 지어서 부르게 하셨습니다.

애가는 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노래, 장송곡입니다. 또 애가는 나라가 망했을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유다가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어떻게 될 것을 먼저 알려주시고자 애가를 지어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겔 19:1-4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사자들을 키우는 암사자가 유다 나라를 의미한다면, 애굽으로 끌려간 젊은 사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그것은 남유다 제 17대 왕 여호아하스를 뜻합니다. 여호아하스는 유다 16대 왕 요시야의 아들입니다.

요시야 왕은 얼토당토 않게 앗수르-바벨론 전쟁에 끼어들어서 바벨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바벨론 편이 되어 앗수르의 원정군인 애굽의 바로느고를 저지하다가 전쟁에서 전사를 합니다. 애굽 장군은 요시야를 죽이고, 북진하여 바벨론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전쟁에서 지고 귀환하는 길에, 전쟁에 패배한 분을 풀기 위해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왕하 23:32-33을 보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 왕이 사로잡혀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여호아하스는 그래서 겨우 석 달밖에 왕위에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애굽으로 끌려간 이유에 대하 말씀하길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사람을 삼켰다’는 표현은 여호아하스가 행한 악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동물을 그냥 내버려둘 수 있을까요? 죽이거나 벌을 내려야 하겠지요.

유다의 왕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왕이라면 모름지기 백성들을 보호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백성을 잡아먹는 왕이 많았습니다.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서 하나님을 떠나고, 백성들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도록 만드는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나라들을 의지하다가 그들에게 이리 저리 흔들려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백성을 지키기는커녕 잔인한 약탈자일 때가 많았습니다.

잠언 28:15절을 보면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같으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의 왕과 방백들은 사자가 짐승을 잡아먹듯이 백성들을 삼켰습니다.

애굽으로 끌려간 여호아하스 왕은 요시야 왕의 4번째 아들입니다. 여호아하스가 끌려간 후 둘째 아들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릅니다. 여호야김은 신하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도 3개월만에 바벨론으로 붙잡혀갔습니다. 바벨론은 유다가 자기들에게 반역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왕을 포로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여호야긴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탓에 요시야의 3번째 아들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시드기야는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리고 그의 최후를 열왕기서 제일 마지막 장인 열왕기하 25장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시드기야는 자기 눈 앞에서 아들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자기 자신도 눈이 뽑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자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유다 왕들은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파괴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해 지어 부르게 한 애가는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지도자의 실패가 공동체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왕들이 고관들이 자기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고 백성들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실패는 온 백성의 실패가 되고 한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할 때에 공동체 모두가 바로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 공동체가 어려워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내게 맡기신 역할은 무엇인가요? 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나부터 내게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책임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또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실패하였을 때 돌이켜야 하는데 또다른 왕을 세우는 헛된 시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처럼 유다 왕이 악한 통치를 계속하자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바벨론을 들어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경고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않았고, 자기 힘으로 서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한 것입니다. 계속 불순종하면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아직도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없나요? 습관적으로 짓는 죄가 있다면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반드시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방치해두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영적 질병입니다. 우리 생각과 행동이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도록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두 번째 비유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19:10-14 읽겠습니다.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 바 되고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포도나무 역시 이스라엘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자주 빗대어 말합니다.
물가에 심겨진 포도나무는 어떻습니까?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시편 80:8-16절을 보면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준비하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편만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우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헐으사 길에 지나는 모든 자로 따게 하셨나이까. 수풀의 돼지가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이키사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그것이 소화되고 작벌을 당하며 주의 면책을 인하여 망하오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에스겔서와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에 심으셨습니다. 물가에 심은 포도나무가 물이 넉넉하여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홀이 될 만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의 왕들을 말하는 것이고 동시에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를 뜻하기도 합니다. 

주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을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셨습니다.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가지는 바다까지 뻗고 강까지 뻗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이 이제는 사자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듯 더 이상 소망이 없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애가를 통해 그 종말을 예언케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끝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말은 완전한 버려짐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지는 시편 80:17-19절을 보면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가 불에 탔을 지라도 주의 오른 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에게 손을 얹어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소생케 하여 달라고 간구하게 하십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면, 주의 얼굴을 비취시며 구원해 주신다고 합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15:5절을 보면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곡할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울 자가 없습니다. 수많은 왕들이 세워졌지만 온전한 왕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이 외쳤지만 거짓 선지자의 수와 힘에 비하면 역부족이었습니다.

다 끝난 것 같은 이스라엘을 위해 오늘도 울어주는 이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9:41-44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다 망하여, 더 이상 아무 소망이 없어진 이스라엘을 여전히 지켜보시는 주님. 그들을 중보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나라는 멸망했다 할지라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 끝난 것 같지만 그러나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신실하지 못하여,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그로 인해 징계를 받고,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버리심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의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절대 낙심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아주 버려진 것 같은 때에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을 때려서라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시는 은혜의 날 보내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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