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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큐티설교 (에스겔 16:1-14)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설교일 | 2019-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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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발간된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94세 어머니를 9년째 모시고 있는 65세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삼시 세끼 밥을 지어드리면서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94세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게 된 이유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는데,
의사가 말하길, 길어야 1년 밖에 못 살 거라고 한 말을 믿고서
1년만이라도 잘 모셔야 겠다 생각하면서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년, 2년, 의사의 말과는 달리 어머니는 돌아가시지는 않았고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저자의 가족들은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치매가 오면 보통은 요양원에 맡기지요.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도 치매 때문에 요양원에 맡겼는데,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요양원에서 혼자 쓸쓸히 돌아가시게 한 일이 죄송스럽고
아버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어머니는 요양원에 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식구들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조그만 집을 따로 얻어서
어머니와 자기, 단 둘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자는 어머니를 위해 삼시 세끼 밥을 지어드리게 되었답니다.
어머니는 식사를 다 드시고, 돌아서서는 금새 또
왜 밥을 안 주냐고 신경질을 내시면서 밥을 내놓으라고 고함을 치십니다.
정신이 집을 나간 사이 식탐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지요.
잘 다니던 광고회사 임원 자리도 내려놓고, 정성을 다해 모셨지만
그러나 병세는 점점 심해지고 어머니 돌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저자는 이가 9개나 빠졌다고 합니다.
지친 마음에 "어여 그 강을 건너가세요! 아버지한테 가세요!"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3년은 정신없이 지냈다고 해요, 그리고 그 다음 3년은 지옥의 투쟁을 하면서 그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답니다.
그 다음 3년은 '언제 이 일이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초월한 그런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의무감 만으로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어요?
9년이 될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을텐데 라고 솔직하게 책에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기자가 이 책을 읽고 찾아가서 물었답니다.
다 놓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 라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겔 16:5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이 말씀을 생각했고,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실 때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말씀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 성경 말씀들을 생각할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결국 사랑과 책임의 마음이 이겼다고 합니다.
어머니 탯줄 달고 내가 태어났는데, 이제 나만 의지하는 이 여자를 내가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참고 견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15-17장 문맥을 보았을 때 이 내용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버림받은 이스라엘, 핏덩어리가 같은 유다를 하나님이 거두어서 영화롭게 해주셨는데,
그러나 그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의지하니
어찌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 않으실 수 있겠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라는 이 메시지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씀이기에
오늘 큐티설교는 이 점에 대해서만 집중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말 못할 어려움이 있지요.
힘든 일, 참아도 참아도 멈추지 않는 눈물,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
내게 근심을 주는 사람, 생각하면 화가 나고, 한숨이 나오는 식구,
어려운 사회생활, 직장 상사, 어두운 사업 전망
아니면, 정말 이루고 싶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는 너무나도 힘든 간절한 소망
우린 다 말 못할 어려움이 있고, 그것 때문에 또 이렇게 새벽기도회에 찾아나올 수 밖에 없는게 사실입니다.
맨날 그냥 웃기만 하는 앞에 서 있는 저도
사실은 성도님들에게 말 못할 고민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정말 사랑하는 제 아내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말할 수 있어요.
앞에 소개해드린 치매 걸리신 어머니를 혼자 모시고 사는 저자처럼
정말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 중에서도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잊어버리고 살고 싶은데, 나 혼자 훌훌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데,
죽는게 차라리 더 낫겠다 그런 생각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생각하는 분도
어쩌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만 믿고 살아가는 자녀들,
내가 아니면 더 이상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아무도 돌봐줄 사람 없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속으로만 눈물 삼키며 살아가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성경말씀을 더욱더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단단히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에게 오늘도 말씀해 주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겔 16:5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한 번만 말씀하지 않고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시 이르기를"
"다시 이르기를 (어떻게요?)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겔 16:3-5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이 말씀은 그 당시 문화 현상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에는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여,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집 문 밖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가치가 뚜렷해서 그럴 수 없지만
과거에는 아이도 그저 소유물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를 버린다 해도 크게 흠이 될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찮게 여기는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존재, 오랑케 나라 아모리, 헷 출신 사람을 통해 낳은 아이는
천하디 천한 존재일 뿐입니다.
음란한 가나안, 아모리 헷 족속을 생각할 때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인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살아 있으나 없으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종으로 팔아도 아깝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그 아이의 출생을 축하해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기를 밖에다 버린 것입니다.
'아무도 너를 돌보지 않는다, 아무도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가 뭐냐? 탯줄도 못 자른채 버려진 존재 아니냐?'
하나님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질 정도로 가치 없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시고 거두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지 않으셨다면 길에서 버려져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아무 가치 없는 우리를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말씀해 주십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말씀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절대 버려진 삶을 살지 않습니다.
세상은 죽어라 죽어
네가 뭔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너는 필요없어. 너는 하찮아. 너는 없는게 차라리 나아
조롱하고 낙심시키고 스스로 포기하게 만듭니다. 죽음의 길을 가도록 우리를 충동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밑바닥, 쓴 맛을 보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살아만 있어라! 살아만 있어다오" 간절히 부탁하십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나를 바라보고 나만 생각하고 살아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만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 14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지만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 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래 부정하고 더러운 출신, 버려질 존재였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살아남아라 살아만 있어라 말씀하시고
결국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두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씻기시고 가꾸셔서
존귀한 왕후로 왕비로 삼으십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고
소망가운데 오늘도 믿음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번호 | 분류 | 제목 | 작성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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